폐가나 오래된 집을 고쳐서 사는 삶에 관심이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여러 지역을 경험하면서 아파트보다는 농가 주택이나 단독 주택이 더 익숙한 그였다. 첫 책을 냈을 때도 폐가 이야기를 넣은 이유였다. 많은 이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고 부동산 투자와 맞물려 재테크 수단으로 욕망하지만, 그에게 집은 사는 곳이자 죽는 곳에 가까웠다.
오래된 집이나 폐가에 관심을 갖고 있던 소설가 최진영은 몇 해 전 조한진희의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읽게 됐다. 책은 질병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 잘못된 의료제도와 사회구조를 보여주고 각성을 촉구했다. 오래된 폐가에 대한 관심에, 병과 죽음을 직시하는 성찰이 겹쳐지자, 한 편의 소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주간지 『시사인』의 기획시리즈 「죽음의 미래」와 다큐멘터리 『엔드 게임』도 봤다. 그리하여 지난해 9월 문예지에 단편소설 「홈 스위트 홈」을 발표했다.
「홈 스위트 홈」은 온전한 자신만의 집을 갖지 못한 채 살아오던 40대 일러스트 작가 인 ‘나’가 말기 암 진단을 받은 후 폐가를 자기만을 위한 공간으로 고쳐 미래를 선택하려는 과정을 섬세한 문체로 그린 단편이다. 나는 바쁜 일상에 치여 살다가 동거인 어진과 함께 보령의 빌라로 이사 오면서 삶의 여유를 되찾는다. 하지만 결혼을 앞둔 순간, 암 진단을 받는다. 항암치료를 끝냈지만 또다시 암이 발생하고, 3차 재발을 우려하게 된다. 나는 자신의 미래를 직접 선택하기로 하고, 엄마와 함께 미래를 담을 폐가를 고치기 시작한다.
“사랑을 두고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유로울 거야. 사랑은 때로 무거웠어. 그건 나를 지치게 했지. 사랑은 나를 치사하게 만들고, 하찮게 만들고, 세상 가장 초라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어. 하지만 대부분 날들에 나를 살아 있게 했어. 살고 싶게 했지. 어진아, 잘 기억해. 나는 이곳에 그 마음을 두고 가볍게 떠날 거야.”(34쪽)
최진영의 「홈 스위트 홈」은 지난 한 해 동안 국내에서 발표된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이상문학상의 제46회 대상작으로 지난달 선정됐다. 심사위원회(권영민·구효서·김종욱·윤대녕·전경린)는 당시 작품에 대해 “인간의 삶이 집이라는 공간과 합쳐져 만들어 내는 기억의 심오한 의미를 존재론적으로 규명하고 있는 이 작품의 문학적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특히 권영민 문학사상 편집주간은 “작품에서 집은 현재의 삶을 과거의 시간과 연결하고 먼 과거의 일들을 현재로 끌어와 회상할 수 있도록 만들며,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는 다채로운 기억들은 인간의 삶에 내재하는 심오한 존재론적 의미와도 맞닿게 된다”고 호평했고, 소설가 윤대녕은 “작품은 죽음이라는 생의 근원적 화두를 뜨겁게 응시하고 있다. 그 시선이 뜨거운 만큼 삶은 휘황하게 불타오른다. 시공간이 씨줄과 날줄로 겹치는 교차점에서 바야흐로 집은 ‘우주’로, 시간은 ‘영원’으로 확장되기에 이른다”고 적었다.
새벽 두시까지 꾸벅꾸벅 졸면서도 무언가를 썼다.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달에 한 권씩 일기장을 갈아 치울 정도로 밤마다 미친 듯이 일기를 썼다. 졸면서 쓴 일기는 글자를 거의 알아볼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다시 읽지 않았으니까.
기록이나 성찰을 위해 쓴 건 아니었다. 작가를 꿈꾼 것도 아니었다. 오직 들끓어 오르고 폭발할 것만 같은 감정을 덜어 내거나 잠재우기 위해 쓰고 또 썼다. 그것은 살기 위한 글쓰기였다. 열한 살 때 교내에서 백일장에서 처음 상을 받기도 했던 열일곱 살 고등학생 최진영은 일기를 쓰고 또 썼다. 소설가 최진영의 문학 원점이었다.
“10대 시절은 누구나 스트레스와 갈등의 커다란 보따리가 아닐까요. 인생의 큰 변곡점 같습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 기질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활동하는 것보다 혼자서 생각하고 글 쓰고 하는 게 맞았던 것 같아요.”
대학에 입학한 뒤로는 친구를 사귀는 대신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다가 결국 빠져든 건 소설. 졸업 뒤 낮에는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쳤지만, 밤에는 소설을 썼다. 오랫동안 일기를 써왔던 그는 이때부터 ‘문장’을 소설이라는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선 커피와, 컴퓨터와, 혼자만의 시간과,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됐다. 단편소설 서너 편을 완성할 즈음, 자신이 쓴 것을 다른 사람이 소설이라고 생각할지 궁금했다. 문예지 공모에 응모하게 됐다.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난 뒤 영주와 태백, 평택 등 여러 지역을 오가며 자란 최진영은 2006년 문예지 『실천문학』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소설집 『팽이』, 『겨울방학』, 『일주일』 등을,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내가 되는 꿈』 등을 펴냈다. 한겨레문학상과 신동엽문학상, 백신애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여성과 청소년이 주인공의 소설을 많이 쓴 것 같습니다. 저에게 가장 가까운 이야기들이고 필요한 이야기들이어서, 여성과 청소년이 주로 나오는 소설을 썼던 것 같아요.”
한때 살기 위해서 글을 썼지만, 소설가 최진영은 이제 스스로 더 나아지기 위해 소설을 쓴다. 그가 지난해 1월 제주도 한림으로 내려온 이유이기도. 왜냐하면 소설은 더 생각하는 사람, 그러니까 더 나이지는 사람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한편의 소설을 쓰고 나면 나는 쓰기 이전과 미세하게 다른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건과 인물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공감하고, 그 세계에 깊이 들어가 본 나는 이전과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어요.”(「문학적 자서전」, 54쪽)
최진영의 「홈 스위트 홈」을 비롯해 이상문학상 수상작을 엮은 『2023년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이 최근 출간됐다. 작품집에는 대상작 및 최진영의 자선 대표작 「유진」과 함께, 김기태의 「세상 모든 바다」, 박서련의 「나, 나, 마들렌」, 서성란의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 이장욱의 「크로캅」, 최은미의 「그곳」 5편의 우수작이 수록돼 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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