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모친의 ‘편지’는 일본인 승려의 조작이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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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주 작성일23-03-23 19:12 조회1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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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1879~1910) 의사의 의거를 다룬 최근 개봉 영화 ‘영웅’에서 관객을 크게 감동케 한 대목은 결말에서 안중근의 모친 조마리아(1862~1927) 여사가 등장하는 장면일 것입니다. 조 여사는 감옥에 있는 아들 안중근에게 한글로 쓴 편지를 전하면서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大義)를 위해 죽으라”고 격려하며 수의(壽衣)를 전해 줍니다. 배우 나문희의 열연과 ‘내 아들 나의 사랑하는 도마야’로 시작하는 뮤지컬 넘버(삽입곡)가 이 장면을 더욱 비장하게 만듭니다.

문장 순서와 일부 표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 편지의 내용은 그 동안 여러 서적과 미디어를 통해 잘 알려진 것입니다. 바로 아래의 ⓐ죠.(이제부터 자료를 ‘ⓐ’와 ‘ⓑ’로 나눠 구분하겠습니다)

ⓐ”네가 만일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은 구걸하지 말고, 대의(大義)에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수의를 지어 보내내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天父)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현재 대다수 한국인들은 안중근의 모친이 사형을 앞둔 아들에게 이런 감동적인 말을 전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 다른 자료에서 본 조마리아의 전언(傳言)은 상당히 결이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다시 만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는 이후 신묘(神妙)하게 형(刑)을 받아 속히 현세의 죄악을 씻은 후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세상에 다시 나오너라. 너가 형을 받을 때 빌렘 신부님이 너를 위해 산 넘고 물 건너 먼 길을 가서 너 대신 참회를 올릴 것이니, 너는 그때 신부님의 인도 아래 우리 교회 법도에 따라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나거라.”

ⓑ는 ⓐ의 맨 끝부분 문장으로 시작하면서도 ⓐ에 나왔던 그 전까지의 모든 얘기가 빠져 있는 반면, 상당히 읽기 불편한 뜻밖의 내용이 추가돼 있습니다. ⓐ는 ‘너는 대의에 따라 장한 일을 했으니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당당히 죽으라’는 내용이지만, ⓑ는 ‘너는 현세에서 살인이라는 죄를 지었으니 신부님이 너 대신 참회할 것이고 너는 그에 따라 합당한 형벌을 받고 죽은 뒤 죄를 씻고 다시 태어나라’고 꾸짖는 내용입니다. 특히 ‘죄악’이라는 단어를 보고 눈을 의심할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두 자료는 완전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며 진실은 무엇일까요.

1차 조작: 사이토 다이켄 ‘내 마음의 안중근’

도진순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안중근 의거 당시부터 조마리아에 대한 애국적 추앙이 있었으나 위에서 언급된 ‘편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이 광범위하게 등장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 2010년 전후다. 그 원조를 추적해 올라가면…”

앞서 말했던 책, 바로 일본 미야기현 구리하라시 다이린지의 주지인 사이토 다이켄의 그 저서, 1994년 출간한 ‘내 마음의 안중근’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이토는 도호쿠(東北)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아사히신문 기자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그가 쓴 ‘내 마음의 안중근’은 안중근이 뤼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일본인 간수였다는 지바 도시치(千葉十七·1885~1934)와 안중근의 인연을 중심으로 쓴 책입니다. 그러나 사이토 주지는 1935년생이니 지바와 만나 증언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책의 신빙성에는 당연히 의문이 있습니다. 더구나 조마리아의 전언이 안중근 사형 선고 ‘이후’에 이뤄진 것이라는 잘못된 서술과 함께 이 전언을 책에 이렇게 썼습니다.

“공소 같은 것 하지 말고 바로 형을 받아라. 너는 한국인으로서 조국을 위해 의거를 행한 것이다. 공소를 하면 생명은 길어지겠지만 큰 수치가 된다. 만약 네가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해서 공소하려 한다면, 이 어미의 교육은 대체 뭐였는가 하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이 내용은 이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 어떤 자료에서도 볼 수 없던 것입니다. ‘의거’ ‘불효’ ‘웃음거리’처럼 원래 조마리아의 전언에는 없고 더 나중에 나온 ‘편지’ⓐ에만 있는 말들이 여기서 비로소 등장합니다. ‘빨리 형을 받으라’는 것의 이유가 처음 전언처럼 ‘현세의 죄를 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거를 행한 것이기 때문’으로 의미가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조작이었다고 도진순 교수는 평가합니다. 도 교수는 2010년 5월 22일 일본 다이린지에서 사이토를 만나 책 내용의 의문점에 대해 물어봤는데, 사이토는 한참 침묵한 뒤 자리를 떠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와 책 내용 일부를 자신이 조작했음을 시인한 뒤 서둘러 인터뷰를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전언’ 부분에 대한 해명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사이토가 조작을 한 것이 맞는다면, 그는 왜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일까요? 도진순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이토는 다이린지에 안중근 휘호 ‘위국헌신’ 유묵비를 세웠습니다. 책을 발간한 직후 다이린지는 안중근과 한일 교류의 상징으로 부상했죠. 한국인의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안중근 책을 쓰면서 이야기를 과장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편지를 조작·윤색한 것으로 보입니다.”

2차 윤색: 한국어판 ‘내 마음의 안중근’

그런데 이 책이 2002년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원문에는 없는 내용들이 추가됐습니다. 해당 부분의 한국어 번역을 보죠. 번호는 도 교수가 달아놓은 것입니다.

“①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조소거리가 된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분노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공소를 한다면 그것은 목숨을 구걸하고 마는 것이 된다. ②네가 국가를 위하여 이에 이르렀은즉 죽는 것이 영광이나 모자가 이 세상에서는 다시 상봉치 못하겠으니 그 심정을 이렇다 말할 수 있으리…”

사이토의 책을 번역하며 ①에서는 ‘한국인 전체의 분노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원문에 없는 내용이 추가됐습니다. 여기에 1910년 2월 1일 신한민보에 실린 두 번째 전언의 내용인 ②를 새로 삽입해 ‘국가를 위한 일을 한 것이니 공소(항소)하지 말라’는 문맥을 만들었습니다.

조마리아는 아들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렇다면 이후 숱한 한국인들에게 의사(義士)로 칭송된 아들에게 정작 어머니 조마리아는 왜 그렇게 모진 말을 했던 것일까요. “속히 현세의 죄악을 씻은 후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세상에 다시 나오너라”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어머니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조마리아 역시 몹시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첫 번째 전언이 안중근 앞에서 십자고상을 앞세운 엄숙한 의례를 통해 전달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천주교 교리상 남을 죽여 십계명을 위반한 자는 자신도 죽어야 한다는 성경 원리에 따라 죽음으로 속죄해야 한다는 종교적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마리아의 입장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의 것이며, 결코 일제의 판결이나 식민 정책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고 도진순 교수는 말합니다. 조마리아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참가했으며, 아들의 사형 선고 소식을 듣고 “한국의 수십만 생명을 장차 무엇으로 대신하려느냐”고 일본 재판정을 향해 분노했습니다. 이후에도 독립운동의 후원자이자 대모(代母)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됩니다.

‘조마리아 편지’의 조작은 사실의 왜곡에 그치지 않고, 어머니 조마리아와 아들 안중근의 중대한 입장 차이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고 도진순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문제는 항일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쟁점이었으며, 조마리아의 입장은 결국 안중근이 감옥에서 도달한 내면의 최종 지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자의 중요한 이견(異見)을 직시해야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이해하고 계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진순 교수는 “사료의 조작이나 창작이 지극한 호의에 의한 선양이나 선의에 의해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1994년경 뿌려진 조작의 씨앗이 21세기에 들어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윤색되고 전방위로 확대되어, 이제는 일정한 병리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씨를 뿌린 사람과 더불어 대중들의 광범위한 ‘애국주의’가 배양의 온상이 되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논문을 끝맺습니다. “조작된 허구가 ‘장엄한 역사’로 편입되는 것을 들어내고 바로잡기 위해서 호의를 지닌 주제일수록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엄정성, 애국적 주제일수록 비판적 사유가 허용되는 학문적 개방성이 견실하게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안중근 관련 단체의 한 인사가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렇게 미화하지 않아도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다.”

‘내 마음의 안중근’이 출간된 1994년 이전에도 대한민국에서 안중근은 의사(義士)였습니다.

http://n.news.naver.com/article/023/0003745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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